어제 오후 4시쯤이었습니다.
사무실 문을 누가 가볍게 두드리시는 소리가 들렸어요.
나가보니 5년 전에 인가 받으셨던 어른 한 분이 서 계셨습니다.
손에 작은 편지봉투 하나를 들고 계셨고,
"오늘이 마지막 회차 입금일이라 인사드리러 왔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들어오시라 하고 차 한 잔 끓이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편지를 직접 적어 오신 건 처음 받는 일이라 살짝 당황했지만 감사한 마음이 컸어요.
양해를 구하고 글로 옮겨도 되는지 여쭤보니
"누군가 한 분이라도 용기내는 데 도움 된다면 그게 더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글은 그 편지의 일부를 옮기고, 그 사이사이에 제가 기억하는 부분을 덧붙인 기록입니다.
처음 만나러 오시던 그 봄날
"2021년 3월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때 가게 셔터 내리고 한 달 정도 집에만 있었어요.
카드값 4천만 원이 통장에서 매달 빠져나가는데 가게 매출은 절반도 안 됐고,
밤마다 천장만 쳐다보다가 결국 큰누나가 법무사 사무실 가보라고 했습니다.
사무실 들어가는 게 그렇게 무서웠는데, 막상 자리에 앉으니 한 시간이 30분처럼 갔어요."
그분이 처음 오셨을 때 가장 기억나는 건 손이 떨리셨던 거였습니다.
60대 초반 자영업자, 작은 분식집을 17년 운영하셨고,
코로나 시기 매출 절반으로 떨어지면서 카드 4장을 돌려막으셨다고 했어요.
총 채무 4천1백만 원, 변제 가능 소득은 가게 정리 후 시급 알바로 월 130만 원.
인가는 그해 7월에 났고, 월 변제금은 26만 원으로 책정됐습니다.
변제 한가운데 — 2년 차 어느 가을
"2년 차 가을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인가 받았을 때 기쁨은 한 달이면 사라지고,
매달 26만 원이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게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졌어요.
'언제 끝나나' 싶은 마음이 자꾸 들었습니다.
그때 법무사님이 전화 한 통 주셨던 게 큰 도움이 됐어요."
저는 그분께 따로 전화를 드린 기억은 없었습니다.
다만 사무실에서 인가 받으신 분들께 매해 가을쯤 안부 문자를 일괄 발송하는데,
그게 마침 그분 마음 가장 무거우셨던 시기에 도착했던 모양이에요.
편지에는 "별 내용 아닌 그 한 통이 그날따라 큰 위로가 됐다"고 적혀 계셨습니다.
이 부분 읽고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마지막 회차 입금하신 어제
"오늘 오전 10시쯤 마지막 26만 원을 입금했습니다.
60회를 채웠다는 게 처음에는 실감이 안 났는데,
은행 앱에서 '이체 완료' 화면을 한참 쳐다보니 그제야 끝났다는 게 와 닿더라고요.
어디로든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결국 사무실이 떠올랐습니다.
편지 한 장 적어서 들고 가는 게 가장 맞는 인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60회 변제 총액은 1,560만 원이었습니다.
원래 채무 4천1백만 원 중에서 1,560만 원만 갚으시고 나머지는 면책됐습니다.
이 분은 변제 기간 중 시급 알바를 그만두시고,
3년 차에 작은 김밥집 보조로 들어가셨다가 4년 차에 정직원으로 전환되셨어요.
"가게 운영보다 마음이 훨씬 가볍다"고 하신 말씀이 인상에 남습니다.
편지의 마지막 단락
"누군가 이 편지를 보게 된다면 한 말씀만 드리고 싶습니다.
신청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부끄러운 건 빚 때문에 가족 얼굴 못 보고 사는 거였습니다.
용기 내서 사무실 문 두드리시면 5년 뒤에는 저처럼 편지 쓰러 가실 수 있을 거예요.
그동안 신경 써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편지는 여기서 마무리되어 있었습니다.
글씨는 천천히 또박또박 쓰신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편지를 다 읽고 나서 말 없이 한참 차만 마셨던 것 같습니다.
"잘 액자에 넣어두겠습니다" 한 마디만 드리고 보내드렸어요.
지금 사무실 한 벽에 그 편지를 액자에 넣어 걸어두는 중입니다.
오늘 글의 마무리
편지 옮기는 글은 사실 처음 써봅니다.
의뢰인 분께 양해 구하지 않으면 절대 쓸 수 없는 글이니까요.
이번에 흔쾌히 허락해 주신 그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회생 신청을 망설이고 계신 분이 이 글을 보신다면,
편지 마지막 문장만이라도 한 번 더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그 편지를 액자에 넣으면서 한 가지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법무사 사무실은 결국 누군가의 가장 무거운 시간을 잠깐 함께 걸어드리는 곳이라는 사실이에요.
시작은 떨리지만 끝에는 이렇게 편지 한 장이 남기도 합니다.
오늘 글이 누군가의 첫 노크에 작은 용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필요하시면 언제든 전화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