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앞에 봉투 한 다발이 놓였습니다.
2025년 7월의 어느 화요일이었습니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봉투가 족히 50통은 되어 보였고, 색깔은 다 누렇게 변해 있더군요.
"5년 동안 받은 거 다 가져왔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 손이 살짝 떨렸습니다.
사무실에서 자주 보는 장면이지만, 그날따라 무게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50대 후반, 회사원이셨고, 신용은 5년 전부터 막혀 있는 상태였습니다.
본인 명의로 진 빚은 거의 없으셨어요.
다만 2018년에 친한 후배의 사업자금 대출에 연대보증을 서주신 게 화근이었습니다.
후배는 2019년에 사업을 접고 연락이 끊겼고, 그 다음부터는 모든 청구가 본인에게 왔습니다.
"내 빚도 아닌데 왜 내가 갚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5년을 갉아먹고 있던 셈이죠.
보증채무도 결국 내 빚입니다
법적으로 보증인은 본채무자가 갚지 못할 때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특히 연대보증이면 채권자는 본인이 먼저 갚으라고 곧장 청구해도 됩니다.
이게 묘한 부분인데, 감정적으로는 "후배 빚"이지만 법적으로는 그냥 "본인 빚"이에요.
그래서 개인회생을 신청할 때 보증채무도 본인 채무 목록에 포함해서 같이 신고합니다.
이걸 모르고 따로 가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사무실에서는 처음 상담 때 꼭 묻는 게 두 가지 있습니다.
보증을 선 적이 있느냐, 있다면 본채무자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이 두 가지가 회생 신청 전략을 정합니다.
본채무자 소재가 명확하고 일부라도 갚고 있다면 보증인의 부담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정리하고요.
반대로 잠적해서 청구가 본인에게 다 오고 있다면, 회생에 통째로 넣는 쪽이 빠릅니다.
실제로 준비한 서류
이번 케이스에서 가장 시간이 걸린 부분이 서류 준비였습니다.
보증계약서가 7년 전 종이라 본채무자 회사가 폐업하면서 사본을 찾기가 어려웠거든요.
다행히 채권자(은행) 측에 보관본이 남아 있어서 한 달 정도 걸려 받아왔습니다.
이게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라 신청을 결심하셨다면 가장 먼저 시작하시는 걸 권합니다.
나머지 서류는 비교적 빠르게 정리됐어요.
준비한 목록을 적어보면 이렇습니다.
보증계약서 사본, 본채무자 인적사항 자료, 채권자별 청구·독촉 기록 일체, 본인이 한 번이라도 갚은 입금 내역, 신용정보열람 출력본.
특히 마지막 신용정보열람은 한국신용정보원에서 무료로 떼서 가져오시면 됩니다.
이걸 안 떼고 진행하면 누락되는 채무가 생길 위험이 있어요.
누락된 채무는 면책 대상에서 빠지기 때문에 인가 뒤에도 그 빚만 살아남습니다.
개시결정에서 인가까지 100일
7월 중순에 처음 오셨고, 신청서 접수가 8월 말이었습니다.
9월 중순에 개시결정, 10월 말에 채권자 집회, 11월 초에 인가 결정을 받았습니다.
신청부터 인가까지 정확히 100일이 조금 안 됐어요.
변제계획은 60개월, 매월 38만 원이었습니다.
보증채무가 8천만 원, 본인 명의 카드대출이 1천5백만 원, 합쳐서 9천5백만 원 규모였고요.
중간에 채권자 한 곳이 이의를 걸어왔습니다.
"보증인이 신청한 사건이니 본채무자에게 청구 가능성이 있는지 다시 확인해 달라"는 취지였어요.
본채무자 소재불명 자료(주민등록 말소 기록, 휴대전화 해지 시점, 마지막 통화 일자 진술서)를 빠르게 보충 제출해서 일주일 만에 정리됐습니다.
이런 이의 가능성은 처음부터 예상하고 자료를 미리 준비해뒀던 게 시간을 아낀 결정타였습니다.
보증채무 사건에서는 이게 거의 공식처럼 들어옵니다.
의외로 놓치는 부분
한 가지 꼭 말씀드릴 부분이 있습니다.
본채무자가 나중에 나타나서 빚을 갚으면 그만큼은 정산이 필요합니다.
보증인이 회생으로 면책받은 부분과 별도로, 본채무자가 갚은 액수만큼은 채권자와의 관계에서 따로 처리됩니다.
실무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지만 가능성은 안내드려야 해서 적어둡니다.
또 가족 중 누가 같은 건에 함께 보증을 섰다면, 그분의 채무는 그분이 별도로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흔하게 오해하시는 부분.
본채무자가 먼저 파산이나 회생으로 면책을 받았다고 해서 보증인의 빚이 함께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 시점부터 보증인 청구가 본격적으로 강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채무자가 파산했다는데 저는 어떻게 되나요"라는 전화를 매월 두세 통은 받습니다.
이 경우엔 보증인 본인 명의로 다시 신청을 검토해야 합니다.
비슷한 상황이시라면
지금 보증 때문에 독촉이 끊이지 않으시다면 두 가지만 먼저 해보세요.
받은 우편물은 봉투째 한 박스에 모아두시고, 본인이 한 번이라도 갚은 입금 기록을 통장에서 찾아두시면 됩니다.
그 두 가지만 챙겨오시면 30분 안에 회생 가능성의 가닥은 잡힙니다.
보증채무는 자료가 흩어져 있어서 처음 정리가 가장 큰 일입니다.
이 단계만 넘기면 나머지는 법무사가 정리해드릴 수 있는 일이에요.
마지막으로, 처음 봉투 다발을 들고 오셨던 그분 이야기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인가 결정 받으시고 며칠 뒤 인사를 오셨는데, "이걸 왜 3년 전에 안 했을까요"라고 하시더군요.
보증채무는 시간이 흐를수록 이자가 무겁게 붙기만 합니다.
"내 빚이 아닌데"라는 억울함은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그 감정 때문에 정리를 미루면 손해는 결국 본인에게 누적됩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셨다면 이미 결정의 절반은 하신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