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 오후 2시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법무사님, 제가 회생 알아보고 있는데요"라고 운을 떼시더니, "전세보증금이 1억 8천인데 이거 다 빼앗기는 거 아니에요?"라고 물으셨어요.
이 질문, 사실 매주 두세 번은 듣습니다.
오늘은 계산기로 직접 풀어보면서 정리해 드릴게요.
결론부터 한 줄로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전세보증금이 있다고 해서 회생이 안 되는 게 아니고, 보증금이 통째로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보증금 액수가 변제할 총액에 영향을 줍니다.
이 부분이 "청산가치"라는 용어로 등장하는데, 이름은 낯설어도 계산은 어렵지 않습니다.
숫자로 보시면 한 번에 이해되실 거예요.
청산가치, 한 줄로 정리하면
청산가치는 "만약 지금 파산했다면 채권자가 회수할 수 있는 금액"입니다.
법원은 회생에서 그 금액 이상은 변제하도록 요구합니다.
즉 5년 동안 변제할 총액이 청산가치보다 적으면 인가가 안 나옵니다.
그러니까 자산이 많을수록 변제 총액도 자동으로 올라가는 구조예요.
대신 자산이 거의 없으면 청산가치도 거의 0이라 변제 부담이 가벼워집니다.
전세보증금은 이 청산가치 계산에 들어가는 대표적인 자산입니다.
다만 보증금 전액이 그대로 잡히는 게 아닙니다.
대구지방법원 실무에서는 최우선변제권 한도(소액임차인 보호 금액)와 임차주택 매각 시 회수 가능성을 따져서 깎습니다.
또 전세자금대출이 끼어 있으면 그 부분도 차감됩니다.
이 두 가지가 핵심이에요.
실제 계산 — 보증금 1억 8천, 대출 1억 사례
그분 사정은 이랬습니다.
대구 수성구 아파트 전세 1억 8천만 원, 그 중 1억은 전세자금대출.
본인 명의 채무는 카드·캐피탈·저축은행 합쳐서 6천만 원 정도.
직장 다니시는 분이고 월급 실수령 280만 원.
가족은 본인·배우자·자녀 1명, 3인 가구입니다.
청산가치 계산을 단순화해서 적어보면 이렇습니다.
보증금 1억 8천에서 전세대출 1억을 우선 차감, 남는 8천이 본인 몫.
여기서 대구지역 최우선변제권 한도(현재 5천5백만 원)는 채권자가 회수할 수 없으니 더 차감.
8천 − 5천5백 = 2천5백.
이게 청산가치의 기본 골격입니다.
여기에 약간의 보정이 더 들어갑니다.
보증금은 임대차 종료 시점이 불확실해서 100% 가치로는 안 잡고 보통 85~90% 수준으로 평가합니다.
실제로 그분 케이스는 2천1백만 원 정도로 산정됐어요.
즉 5년 동안 최소 2천1백만 원 이상은 변제계획에 넣어야 인가가 납니다.
월 35만 원씩 60개월이면 딱 2천1백이니 충분히 가능한 구조였죠.
신청 전에 챙겨야 할 4가지
전세보증금 있는 분이 회생 상담을 오시면 저는 항상 이 네 가지를 먼저 확인합니다.
첫째, 임대차계약서 사본과 잔여 임대 기간.
둘째, 전세자금대출 잔액과 대출 은행.
셋째, 보증금이 본인 명의인지 배우자 공동인지.
넷째, 같은 주소에 살고 계신 가족 구성(생계비 산정에 영향).
특히 둘째 항목,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신청 시점 기준으로 정확하게 적어야 합니다.
이게 잘못 들어가면 청산가치가 통째로 흔들립니다.
은행에서 발급해주는 대출잔액증명서 한 장이면 끝나는 일이니 미루지 마시고 가장 먼저 떼두시는 걸 권합니다.
참고로 보증금 자체의 가치 평가는 사무실에서 계산해서 변제계획안에 넣어드립니다.
이 부분은 직접 하실 필요 없어요.
이런 경우는 따로 상담하세요
몇 가지 예외 케이스가 있습니다.
보증금이 본인 명의가 아니라 배우자 명의로만 되어 있다면 청산가치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다만 부부가 같이 회생을 신청하는 경우엔 또 얘기가 달라지죠.
보증금이 직장 사택이거나 회사가 임대인인 특수한 형태도 처리 방식이 다릅니다.
이런 경우는 일반 상담 30분으로는 결론을 못 내드리고, 서류를 보면서 따로 검토해야 합니다.
그리고 보증금이 너무 큰 경우 — 가령 5억 이상 — 회생 자체가 부적절할 수 있습니다.
청산가치가 그만큼 커지면 5년 동안 변제할 수 있는 금액을 넘어버리기 때문이에요.
이런 분들은 회생보다 다른 채무조정 방법(신용회복위원회 워크아웃 등)이 더 맞을 수 있습니다.
숫자가 어디서 끊어지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니까 직접 계산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우리 집 보증금이 큰데 어떨까" 싶으시면 한 번 들러주시기 바랍니다.
정리
오늘 글을 한 페이지로 압축하면 이렇습니다.
전세보증금 있어도 회생 신청 가능.
다만 보증금 액수만큼 청산가치가 잡혀서 5년 변제 총액에 반영됨.
전세자금대출과 최우선변제권 한도는 차감되니 실제로 잡히는 금액은 보증금 전액이 아니라 일부.
계산이 복잡해 보이지만 임대차계약서 + 대출잔액증명서 두 장이면 30분 안에 가닥이 잡힙니다.
처음 전화 주셨던 그분은 다음 주에 직접 사무실로 오시기로 했습니다.
전화 끝에 "보증금 빼앗기는 줄 알고 6개월 동안 신청 못 했어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이 한 마디가 오늘 글을 쓰게 된 이유입니다.
같은 이유로 망설이고 계신 분이 한 분이라도 줄어들면 좋겠습니다.
계산기 두드리는 30분이 6개월을 단축시킵니다.